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에 ‘중입자 가속기 기반 암치료·의료산업 클러스터’가 추진된다. 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8월 20일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를 밝히며(고정형·회전형 치료실 각 1개, 80병상 케어센터 포함) 본격 착수를 예고했다.
사업지는 도계광업소 일원으로, 폐광지역 전환 모델의 상징 사업으로 포장됐다. 그러나 도계읍은 인구가 1만 명에 못 미치는 소도시로, 거주 기반 수요만으로 초고가 의료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고개를 든다.
현실의 벽: 작은 내수, 얇은 접근성
도계는 삼척 내륙의 교통 결절점이지만, 대도시 직결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없는 탓에 접근성은 영동선·태백선 계통의 무궁화호(일부 ITX-마음) 정차가 사실상 전부에 가깝다. 환자·보호자·전문 인력의 장·단기 이동성과 야간 응급 대응을 생각하면, 이 교통 여건은 중입자 치료센터의 ‘가동률’을 제약할 수 있다.
숙박과 생활편의 인프라도 과제다. 포털·OTA에 등록된 소규모 숙소는 있으나 환자·보호자 체류를 전제로 한 ‘메디컬 로지’급 집적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치료 특성상 3~5주 체류 수요가 반복되는 만큼, 장기 체류형 숙박·간병 동반 서비스가 함께 깔리지 않으면 환자 유치는 수도권·영남권 경쟁 거점에 밀릴 소지가 크다.
경제성의 관건: ‘누가, 얼마를 내고, 얼마나 많이’ 올 것인가
중입자 치료는 장비·시설 투자와 전력·정비 등 고정비 부담이 매우 크다. 같은 기술을 선도 도입한 연세의료원은 치료실 3개 전면 가동 시 연간 약 1,200명 처리 용량을 제시했다. 즉 센터 하나가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권역 내 환자 풀을 넓히고 예약 대기·재원일수·회전율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도계가 성공하려면 ‘지역 주민’이 아니라 전국 환자가 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장벽은 가격이다. 국내 중입자 치료는 아직 전면 급여화되지 않았다. 급여·선별급여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으면 접근성 향상이라는 정책 명분은 공허해진다. 요컨대 경제성의 방정식은 수요(환자 유입)×가격(본인부담)×가동률로 귀결되며,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지방비 보전이 상수로 굳는다.
성공의 최소 조건: ‘외부 환자 70%+교통·숙박 패키지+급여 로드맵’
전문가들은 도계형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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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권역 환자 유치 체계: 수도권·영남권 상급병원(방사선종양·외과·혈액종양)과의 ‘허브-스포크’ 전원 협약을 법적 MOU로 묶고, 초기 3년간 외부 환자 비중을 최소 60~70%까지 끌어올릴 전략이 필요하다. 예약 대기일·치료 개시 리드타임을 KPI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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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선별급여 로드맵: 대상 암종·적응증·본인부담률·적용 시점을 단계표로 제시해야 한다. 로드맵이 없으면 장거리 환자 유입은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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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연계: 강릉·동해 등 KTX 정차역·버스터미널에서 무료 셔틀+의료 코디네이터를 상시 운영하고, 야간 응급 전원 루트를 매뉴얼화한다. 도계역 시간표에 맞춘 픽업도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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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체류형 숙박: 병원 옆 ‘메디컬 로지’(간병 동반형)와 보호자 하우징을 민간투자(PPP)로 100실 이상 확보, 치료비+숙박+이동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 요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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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파이프라인: 방사선종양 전문의·의료물리사·가속기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한 근무·교육·정착 인센티브(주거·자녀교육·연구비)를 제도화하고, 강원권 대학·연구소와 공동 채용·연구 트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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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비 투명성: 전력비·정비비·QA·소모품까지 포함한 10년 운영비 시뮬레이션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적자 보전 한도·조건을 조례와 SPC 협약에 명문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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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개소: 고정형→회전형 순으로 가동률을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확장, 예타 이후 증액 리스크를 낮춘다.
실패를 피하는 장치: ‘게이트’와 ‘철수 조건’
정책 결정에도 브레이크는 필요하다. ▲외부 환자 비중, ▲가동률, ▲평균 대기일, ▲의료사고·중단률, ▲연간 영업손익 등 5개 지표에 분기별 게이트를 걸고, 4개 분기 연속 미달 시 확장 중단·사업 구조조정·민간위탁 전환 등 철수 옵션을 자동 발동하도록 계약에 넣어야 한다. 이는 세금으로 떠받치는 ‘영구 적자 시설’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도계읍의 작은 내수는 단점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곳에서 중입자 치료센터가 성공하려면, 지역 수요가 아니라 전국 환자 이동을 전제로 한 가격·접근성·체류 인프라를 먼저 풀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밋빛 조감도가 아니라, 급여화 로드맵과 외부 환자 유치 계획, 교통·숙박 패키지, 운영비 공개라는 네 가지 ‘실행 문서’다. 이 네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예타 통과의 박수는 곧 지역 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