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무나 가까운 두 기관의 거리
현실의 법정에서는 종종 ‘검찰의 주장을 검증하는 심판자’가 아닌, ‘검찰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 적는 관리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같은 재심 무죄 판결이 잇따르며 드러난 공통점은, 판사들이 수사 단계에서 자행된 불법과 위법을 제대로 걸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① 검찰 중심의 수사·기소 구조 — ‘검사 말이 곧 사실’이 되는 현실
한국의 형사절차는 오랫동안 검찰 절대주의 구조를 유지해왔다.
수사는 경찰이 하지만, 사건을 재판에 넘길 권한(기소권)은 검찰만이 가진다.
검찰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법정에서도 ‘공소 유지’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사실상 주도한다.
즉, 검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고, 검찰이 법정에서 자기 주장을 스스로 입증하는 구조다.
판사는 그 사이에서 ‘증거의 적법성’을 형식적으로 확인할 뿐, 그 증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고문·협박·유도신문으로 얻은 자백조서도 “서명 날인했으니 증거능력 있음”이라는 명분으로 채택돼버린다.
② 법원과 검찰의 ‘관료적 동질성’ — 사법 엘리트의 폐쇄적 문화
법조계 내부의 인적 구조 또한 문제다.
대부분의 판사와 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 출신으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시험을 통과해, 비슷한 커리어 라인을 밟아온 ‘엘리트 집단’이다.
그들은 제도 안에서 서로를 “동료”로 인식한다.
따라서 검사의 불법을 폭로하는 것은 곧 ‘조직 내부를 공격하는 행위’로 여겨지는 폐쇄적 문화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판사는 검찰의 수사기록을 믿는 편이 훨씬 ‘안전한 선택’이 된다.
검찰의 주장을 뒤집으면 “이상한 판사”가 되고, 검찰의 논리를 그대로 인정하면 “무난한 판사”가 된다.
이른바 ‘사법부의 눈치문화’다.
③ ‘법정 중립’이 아닌 ‘기소 중심주의’의 잔재
한국의 재판은 ‘기소된 사람은 일단 유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아래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검찰의 기소가 곧 ‘유죄의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판사들은 “무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근거가 없다면, 검찰이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사실상 피고인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하지만 법조 실무에서는 여전히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라는 역전된 논리가 작동한다.
④ 언론과 여론의 압박 — ‘결정적 증거’보다 ‘드라마틱한 결론’을 선호하는 사회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일수록, 검찰은 여론의 무게를 이용해 ‘결과’를 먼저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법원은 그 결과에 반하는 판단을 내릴 경우
‘여론 역풍’과 ‘검찰의 반격’을 동시에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판사들은 ‘검찰이 제시한 스토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판결은 여론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방어적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짙다.
⑤ 사법개혁의 본질 — ‘분리’와 ‘독립’이 핵심이다
검찰이 권한을 남용해도, 판사가 그 불법을 걸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검찰과 법원이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서로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법개혁은 단순히 수사권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검찰과 완전히 분리된 견제자로 서야 하며, 판사가 ‘검찰의 기록’이 아닌 ‘피고인의 진술과 증거’를 직접 검증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때 비로소 “검찰의 불법을 걸러내는 법원”이 가능해진다.
권력의 균형이 무너진 자리엔 언제나 희생자가 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서처럼, 검찰의 불법을 법원이 걸러내지 못하면, 그 피해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정의 파괴로 돌아온다.
사법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권의 마지막 방패여야 한다.
진짜 정의란 판사가 검찰의 편에 서지 않고,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 판사에게 맡긴 단 하나의 사명이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