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우리 사회에 화학제품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일깨운 사건이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충분한 검증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체와 동물에 유해한 화학성분을 기반으로 제조한 생활화학제품을 시중에 유통시켰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보상과 제도적 정비는 완결되지 않은 채 표류 중이다.
당시 정부는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생활화학제품의 관리 주체를 보건복지부 산하 식약처에서 환경부로 이관하고, 보다 엄격한 통제와 감독을 천명했다. 제도의 취지 자체는 바람직했다. 그러나 실무 적용 단계에서는 공공방역용 제품과 민간용 제품 간의 기준이 불일치하고, 정책 일관성의 부재로 인해 현장에서 혼선과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 조달을 통해 공급되는 공공방역용 의료용 살충제에 대한 이중 잣대다. 이들 제품은 농림축산부 관리 하의 농약 성분과 동일한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유독 의료용 살충제에 대해 ‘인축 유해성 재시험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식약처에서 인증받은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중복 시험을 요구하며 특정 컨설팅 업체를 통해만 진행 가능하다는 지침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는 물론, 불필요한 규제와 업계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요구사항은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의 기존 제품에는 예외를 적용하면서, 의료용 살충제 분야의 중소 영세업체들에게만 과도한 시험비용과 컨설팅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형평성을 상실한 규정 적용이며, 정책 일관성을 벗어난 부처 간 이기주의의 산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제도 하에서는 공공조달용 제품 생산이 위축되고, 그 피해는 결국 정부기관과 지역 보건현장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정부가 지정한 컨설팅업체와 이를 지휘‧감독하는 구조 자체에 대해 “불투명한 커넥션 의혹이 일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안전성과 형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과 현실 기반의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수요기관, 조달업체, 정부 당국 간 충분한 협의 구조를 바탕으로, 신뢰받는 규제와 관리 체계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는 유연한 행정이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