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인권의날을 맞아 강릉에서 인권영화제를 묵묵히 이어온 한 시민의 이야기가 지역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2022년, 영화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오가던 당시 실무를 맡을 사람이 없어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지만, 그는 “그렇다면 내가 하겠다”며 조용히 손을 들고 나섰다. 그 결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후원금을 모아 상영료·초청료·기념품·대관료 등을 충당하면 남는 예산은 거의 없다. 인건비는 고려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행사 퀄리티나 적극적인 운영 방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없는데 있는 것처럼 꾸밀 수는 없다”며 “영화제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으로 유지되는 자리”라고 토로했다.
그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움직이면 누가 부르지 않아도 발끝이 먼저 그곳으로 향한다”며 “이런 일은 원래 함께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하지 않으면서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시선들에 대해 “함께하지 않는 이유를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의 삶이 처음부터 이런 길을 향했던 것은 아니다. 삼십대 중반까지 그는 술자리와 골프, 여행을 즐기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강릉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소식조차 모르고 지낼 정도로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회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 더 멋있어 보였고, 그 선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남 얘기를 안주 삼아 살아가는 대신, 내가 사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며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공공의 일을 해오면서 그는 때때로 자신의 삶이 타인의 기준으로 가볍게 평가되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이에 그는 “내가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고 사는 것도 아닌데,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는 일은 이제 멈춰줬으면 한다”며 “침묵이 당연하다는 듯 요구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호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상을 향해 조용한 제안을 던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전부는 아닙니다. 남을 말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어떨까요?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세상을 움직이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강릉의 작은 인권영화제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의 발끝이 먼저 반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걷겠다는 이들의 연대로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한방통신사 양호선기자 기자 |









